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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가사엔 엄격,, 정치엔 여유
박정희 (朴正熙) 대통령은 '자손을 위해 미전 (美田.좋은 땅) 을 사지 않는다' 는 일본 한시 (漢詩) 를 자주 암송하곤 했다. 일본 메이지 (明治) 유신을 주도한 사이고 다카모리 (西鄕隆盛)가 지은 것이다. 실제로 朴대통령이 1남2녀의 자손을 위해 남긴 재산은 대통령이 되기 전 살았던 서울신당동 집 한채 뿐이었다.
물론 청와대 금고에서 적지않은 돈 (8억원) 이 나왔지만 이는 자손을 위한 것이 아니라 쓰다 남은 정치자금으로 보인다. 그 돈중 3억원은 합수부가 가져가고 5억원은 유족에게 돌아갔다. 스위스은행 비밀계좌가 있었다는 주장도 끊이지 않지만 지금껏 확인되지 않고 있다.
설령 있었다손 치더라도 몇 푼 아니었을 것이고 그나마 '정치자금' 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그의 개인적인 청렴성은 널리 알려져 있다. 러닝셔츠를 해지도록 입고 허리띠도 너덜너덜할 때까지 바꾸지 않았다. 체질적으로 호사스러운 것에 거부감을 느꼈던 듯하다.
朴대통령 일가족은 여름휴가 때면 진해 앞바다 저도에서 지냈다. 저도엔 일제시대에 지은 낡은 목조가옥 밖에 없어 밤엔 진해로 나와야 했고, 그럴 때마다 해군 경비정들이 출동하는 등 일이 번거로웠다. 72년 여름휴가를 끝내면서 박종규 (朴鐘圭.작고) 경호실장에게 "집을 수리해 잠잘 수 있도록 하라" 고지시했다.
73년 대통령 일행이 다시 저도를 찾았을 때 목조가옥은 없어지고 2층 양옥 돌집이 들어서 있었다. 朴실장을 불렀다. "수리하라고 했지 누가 새로 지으라고 했어. 너는 뭘 시키면 꼭 이렇게 하더라. 짐 내리지 마. " 朴대통령은 6.25 이전 중사시절부터 데리고 다녔던 朴실장에게만은 반말을 했다.
막 돌아서는데 김정렴 (金正濂.73) 비서실장이 "진해엔 숙소가 미처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라며 겨우 붙잡았다. 그날 밤 측근들은 구수회의를 갖고 미리와 대기중이던 정주영 (鄭周永.82) 현대그룹 회장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鄭회장이 대통령 앞에 섰다. "제가 지었습니다. 각하께서 쓰시는데 저의 사재 (私財) 인들 아깝겠습니까. " 현대건설에서 공짜로 지어준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어쨌든 대통령의 화는 풀렸다.
박정희는 그러나 정치자금에 관한한 후했다. 그는 정치자금을 직접 만지지 않았다. 누가 돈을 가져 오더라도 곧바로 비서실장에게 돈의 성격을 설명하
고 넘긴다. 대통령을 대신해 정치자금을 주무른 주인공은 정치권력의 이동에 따라 같이 옮겨 갔다.
역시 김종필 (金鍾泌.JP) 로부터 시작된다. 새나라자동차.증권파동 등 4대 의혹사건들로 조성된 돈은 공화당 창당자금으로 흘러갔다. 그래서 JP가 62년12월 워커힐에서 최고위원들에게 공화당 창당에 대해 설명했을 당시 불만을 품은 최고위원들은 "불순한 자금으로 돈을 물쓰듯 한다" 며 안주 접시를 던졌던 것이다.
하지만 JP는 여유만만했다. 그 와중에 1차로 외유를 떠나면서도 정치자금을 걱정하는 정구영 (鄭求瑛.작고) 공화당 의장에게 "돈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이후 정치자금의 주인공은 반 (反) JP 실력자들이었고 정치자금의 가장 큰 파이프는 일본이었다.
한.일 국교정상화 이전부터 일본돈은 들어오기 시작했다. 미쓰비시 (三菱) 의 한국측 대리인으로 이후락 (李厚洛.73.세칭 HR) 비서실장과 가까웠던 박제욱 (朴齊旭.71.전 영진흥산 사장.미국 거주) 씨는 "63년 대선을 앞두고 미쓰비시로부터 1백만달러를 빌려 대선자금으로 사용했다" 고 주장했다.
그가 '빌렸다' 고 하는 것은 '몇년 뒤 당인리발전소 프로젝트를 미쓰비시에 주는 형식으로 갚았기 때문' 이다. 일본돈은 65년 국교정상화 이후 유.무상차관 형식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리베이트나 커미션이란 이름으로 정치자금화됐다.
일본 이토추 (伊藤忠) 상사 서울사무소장이었던 고바야시 유이치 (小林勇一.작고) 는 95년 일본 교도 (共同)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67년 총공사비 2천6백만달러인 영동화력발전소 프로젝트를 따면서 김성곤 (金成坤.작고.쌍용그룹 창업자.SK) 공화당 재정위원장과 김형욱 (金炯旭.실종) 중앙정보부장에게 공사비의 7%인 1백80만달러를 커미션으로 주었다" 고 밝혔다.
당초 정치자금 창구인 SK에게 4%의 커미션을 지불하고 계약을 체결하려는데 갑자기 김형욱이 소환해 3%를 내놓으라고 위협했다는 것이다. 이후에는 미국 자금도 들어왔다.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걸프 관계자는 "71년 김성곤으로부터 선거자금 1천만달러를 요구받고 협상해 3백만달러를 지급했다" 고밝혔다.
걸프의 해외 정치헌금중 80%가 한국에 주어졌다는 불미스런 기록도 남아 있다. 69년 金중앙정보부장이 경질되고 71년 10.2 항명파동으로 SK가 사라지면서 정치자금 창구는 HR로 집중됐다.
HR의 아들 이동훈 (李東勳.49.제일화재 회장) 씨는 미 의회 증언에서 "아버지가 스위스은행 비밀계좌 등을 통해 돈을 관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대통령의 정치자금" 이라고 증언했다. 문제는 이같은 정치자금 조성과 실력자들의 '떡고물' 챙기기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이다.
70년대에 김용태 (金龍泰.71) 전의원은 朴대통령과 정치자금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朴대통령은 "받고 싶어 받나, 할 수 없으니까 받지" 라는 반응을 보인 뒤 정치자금을 만지는 실력자들의 뒷돈 챙기기에 대해선 "인간이란 어차피 다 이중인격자야. 돈 챙기는 놈들, 내가 다 알지" 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朴대통령은 정치자금을 '필요악 (惡)' 으로 받아들였고, HR의 말처럼 '떡을 만지다 보면 떨어지는 떡고물' 을 적당히 눈감아 주면서 통제했다는 얘기다.
실력자들이 권좌에서 떠날 때 솔직히 고백하면 박정희는 대체로 '사면' 해줬다. 71년 박태준 (朴泰俊.70.자민련 총재) 포항제철 사장이 보험금 리베이트로 받은 6천만원을 "정치자금으로 써주십시오" 라며 박정희에게 가져갔다.
朴대통령이 "가져가 마음대로 써 봐" 라며 돈을 돌려주자 朴사장은 "제가 쓰기에는 너무 많습니다" 라고 말했다. 박정희는 "통이 그렇게 작아" 라며 웃었다. 당시 6천만원이면 서울시내 괜찮은 집 10여채를 살 수 있는 거액이었다. 포항제철은 박정희가 만들어준 '종이마패' 덕분에 정치자금으로 돈을 뜯기지 않았다.
포철이 설비구매에 한창이던 70년 3월 박정희는 朴사장을 청와대로 불러 "힘든 일 없나" 하고 챙겼다. 당시 실력자 SK.HR 등이 외국업체들로부터 커미션을 받곤 그 업체와 구매계약하라고 朴사장에게 압력을 넣는 통에 포철 건설 자체가 부실화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朴사장은 자신이 구매계약의 전권을 행사하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박정희는 "필요한 내용을 메모해봐" 라고 한 뒤 즉석에서 건의서 왼쪽 위 여백에 사인을 해주었다.
"일일이 나 만나러 오기 힘들 때 필요할 것 같아서 사인해주는 거야. " 이후 포철은 실력자들의 외압에서 벗어났다.
포철 성공의 신화 속엔 '포철에서만은 정치자금을 빼돌리지 말라' 는 박정희의 뜻이 담겨 있는 셈이다. 70년대 중화학공업의 견인차였던 오원철 (吳源哲.69) 전경제2수석은 10월유신도 이같은 의지의 연속이라고 설명했다.
"朴대통령은 국운을 걸고 방위산업과 중화학공업을 추진하고자 했는데, 그 과정에서 예전처럼 정치자금이 빠져나가선 안된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정치자금의 수요를 줄이기 위해선 돈 안드는 정치가 필요했던 거죠. "
물론 유신은 영구집권욕의 산물임이 분명하지만 朴대통령이 '정치권력은 경제발전을 위한 수단' 으로 생각했던 인물인 만큼 일리가 없지 않은 설명이다.
중앙정보부 국내정치 담당으로 뼈가 굵은 C씨는 "유신으로 정치자금 수요가 이전의 10분의1 이하로 줄었을 것" 이라고 추산했다.
유신 이후 정치자금 창구는 경제관료인 김정렴 비서실장으로 단일화됐다. 金실장은 "매월 공화당 운영비 1억원, 유정회 운영비 2천만~3천만원, 朴대통령의 촌지와 격려금 등 1년에 30억~40억원 정도 들었다" 고 말했다. 그 돈들은 "건실한 기업들로부터 아무 조건없이 최고 1억원에서 최하 1천만원까지모은 것" 이라고 김정렴씨는 주장한다.
정치자금이 사실상 사라지면서 대통령의 촌지만 남았다. 비서실 직원 등에게 명절에 일괄적으로 지급하는 촌지는 20만~30만원, 특별히 누구를 격려할필요가 있을 경우에도 1백만원을 넘기는 촌지는 거의 없었다. 다만 군부대 지휘관 같이 조직을 거느린 경우 하사금 액수는 수백만원대에 이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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