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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당근과 채찍 양칼 인사의 달인
박정희 (朴正熙) 대통령을 만나본 사람들은 그의 두가지 모습을 인상깊게 간직하고 있다. 하나는 담배 권하는 대통령이다. 朴대통령은 사람을 불러앉히고나면 일단 담배부터 권한다. 담배를 받아들면 곧바로 라이터로 불을 댕겨 턱 밑에 갖다댄다. 또 하나는 대통령의 안광 (眼光) 이다.
검은 얼굴에 작은 체구의 朴대통령은 화가 나면 얼굴이 더 검어진다고 한다. 그러면서 작은눈에서 뿜어나오는 눈빛은 푸른빛이 도는 검광 (劍光) 처럼 서늘하다. 朴대통령의 탁월한 용인술 (用人術) 은 이런 두가지 대조적인 모습에서 나온다. 그는 이 두가지 모습을 적절히 보임으로써 내사람을 만들었다.


장기집권의 물꼬를 튼 3선개헌 당시 개헌에 반대하던 김택수 (金澤壽.작고) 의원을 3선개헌의 사령탑인 원내총무에 임명한 과정은 용인술의 백미다. 3선개헌의 움직임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정치권이 들썩거리던 69년 2월 朴대통령은 직접 金의원의 심중을 떠봤다.
그는 대뜸 신세 한탄부터 했다.
"대통령 자리란 정말 불편하고 힘들어. 어떤 때는 옛날 다니던 명동 술집에도 가고싶은데 마음대로 안돼. " 金의원은 이때 '절대권력자의 고독' 에 대해 연민의 정을 느꼈다고 한다.
朴대통령은 곧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우리 경제를 생각하면 걱정이야. 어떻게든 근대화과업을 완수해야 할텐데…. 참 큰일이야. " "벌여놓은 경제개발을 완수하기 위해 집권을 연장해야겠다" 는 얘기다.
당연히 金의원은 "후계자에게 맡기면 된다" 며 3선개헌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朴대통령은 대수롭지 않은 얘기인 듯 한마디 흘렸다. "그래, 일리가 있구만. 그러나 권력의 생리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야. " 얼마 뒤 3선개헌 작업이 본격화되면서 金의원은 전혀 다른 대통령의 모습을 봐야 했다. 朴대통령은 점잖지 못한 수법도 마다하지 않았다.
김형욱 (金炯旭.중앙정보부장.실종) 이라는 대역 (代役) 이 악역을 맡았다. 김형욱은 "집안 사업을 계속할거야, 관둘거야" 라고 협박했다. 金의원의 친형은 한일합섬 창업자인 김한수 (金翰壽.작고) 씨. 당시 같이 3선개헌 반대에 앞장섰던 양순직 (楊淳稙.72.충남향우회장) 의원은 金씨의 이같은 고민을 보다못해 "사업은 해야 하지 않겠나" 라며 뜻을 굽힐 것을 오히려 권할 정도였다.
담배.眼光으로 상대제압 두달 뒤 朴대통령이 金의원을 청와대로 다시 불렀다. 자리에 앉자 담배부터 권했다. "방금 피웠습니다" 라며 예의를 차렸지만기어이 입에 물리고는 라이터불을 댕겼다. 그러곤 한마디. "아무래도 원내총무를 맡아줘야겠어. " 金의원은 "곤란하다" 며 거절했다.


그러자 대통령은 "이건 명령이야" 라고 밀어붙였다. 거듭 고사하자 대통령은 "총재의 명령을 듣지 않는 당원이 어디 있어" 라며 몰아붙였다. 金의원이 "물러가겠습니다" 라며 일어서자 대통령도 벌떡 일어섰다. 주춤주춤 물러나던 金의원의 등이 벽에 닿았다.
金의원은 당시 자신보다 훨씬 체구가 작은 朴대통령의 눈빛 앞에 "완전히 포위된 것같았다" 고 회고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기 (氣) 로 제압한 뒤 나온 부드러운 말. "임자, 날 좀 도와줘. " 金의원도 맥이 탁 풀렸다. "각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원내총무로서 金의원이 처음 처리한 일은 楊의원등 동지 5명을 당에서 쫓아내는 일이었다. 楊의원은 "기가 막힌 용인술" 이라고 혀를 찼다. 金의원은 개헌반대의 핵심일뿐만 아니라 이 운동의 자금줄이었다.
용인술의 요체는 적절한 인물을 적합한 자리에 쓰는 것이다. 朴대통령은 이렇게 기용한 인물을 다시 '디바이드 앤드 룰 (Divide and Rule.분리지배)' 이라는 고전적 용인술로 통제했다.


그 전형적 사례는 유신 이전 흥청망청했던 정치자금 관리였다. 정치권력의 향배를 좌우하는 예민한 문제인 만큼 朴대통령은 아예 당대의 실력자들을 한데 묶어 '4자 회담' 이라는 틀 속에서 서로 견제토록 했다.
당대의 실력자 4인은 김형욱 정보부장과 청와대의 이후락 (李厚洛.73) 비서실장, 당 (黨) 의 김성곤 (金成坤.작고.쌍용그룹 창업자) 재정위원장, 내각의 장기영 (張基榮.작고.한국일보 창업자) 부총리등. 65년초 金부장은 張부총리의 사무실 금고를 턴 적이 있다.
각종 차관을 다루는 책임자인 張부총리가 '딴 주머니' 를 채우고 있다는 첩보에 금고털이 전문가를 보내 부총리 집무실 금고에 있던 내용물들을 남산으로 옮겼다.
金부장은 각종 수표와 귀금속등 내용물의 사진을 찍은 뒤 청와대로 들어가 "부총리를 해임해야 한다" 며 펄펄 뛰었다. 그러나 박정희는 주의만 주는 선에서 끝냈다.
4자 회담이 만들어진 계기는 金부장의 이후락 실장에 대한 압박. 당시 李실장과 가까웠던 박제욱 (朴齊郁.71.전 영진흥산 사장.미국 거주) 씨는 일본 미쓰비시 (三菱) 상사의 한국 진출을 돕고 있었다. 65년 가을 張부총리에 이어 李실장의 뒤를 파헤치던 金부장이 朴씨를 남산으로 연행했다.


朴씨는 "金부장이 '李실장에게 돈을 얼마나 줬는가' 를 집중적으로 캐묻더라" 고 기억했다. 남산에서 풀려난 朴씨는 곧장 노심초사하고 있던 이후락 실장에게 달려가 '공생 (共生) 의 길' 을 제안했다.
"김형욱도 돈 문제에 끼어들고 싶어 나서는 것같은데, 권한을 나눠야겠소. 안그러면 당신이 다치게 생겼어요. 몇 사람에게 권한을 나눠 주고 당신이 총괄조정하면 될거요. " 李실장은 머리 회전이 빠르기로 소문난 사람. 당장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대통령에게 허락을 받아 왔다.
金부장의 측근이었던 X씨는 4자 회담 얘기를 듣곤 "말썽의 소지가 있으니 빠지는게 좋겠다" 고 만류했다. 그때 金부장은 "각하께서 그놈들을 감시하라고 하시는데 빠질 수 있겠느냐" 고 말했다는 것. 김형욱은 자신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를 오히려 "나머지 놈들을 감시하라고 대통령께서 만드신 기구" 라는 소명감으로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박정희의 용인술이 유감없이 발휘된 셈이다. 朴대통령 용인술의 마지막은 사사로운 정에 매이지 않는 버리기, 즉 역할이 끝나면 냉정히 퇴장시키는 것.
73년 윤필용 (尹必鏞.70.전 수방사령관) 사건을 처리한 강창성 (姜昌成.70.한나라당 선대위 공동위원장) 보안사령관의 좌천이 그 전형적인 예다.


姜사령관은 대통령의 특명에 따라 당시 군부 실력자 尹사령관을 구속한 얼마 후 태릉골프장에서 대통령과 골프를 같이 했다.
이날 골프가 끝난 뒤 클럽 하우스에 단둘만 남자 대통령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치다가 마지못한 듯 입을 열었다. "姜장군을 그냥 두면 경상도 군인들 씨가 마른다고 해. " 바로 며칠 뒤 이민우 (李敏雨.작고) 참모차장으로부터 3관구 사령관으로 좌천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얼마 뒤 인근 유성온천에 쉬러 온 대통령으로부터 호출이 왔다. 밤12시 호텔에서 만난 대통령이 은근히 한마디 건넸다.
"임자가 쫓겨난 줄 알고 무시하는 놈들이 있으면 얘기해봐. 내가 혼을 내줄 테니까. " "필요하면 언제든 쓴다" 尹사령관을 쫓아내는데 활용한 姜사령관을 팽 (烹) 한 뒤 다시 심야에 불러 은근히 구슬려 놓는 용인술. '언제든지 필요하면 다시 쓸 수 있다' 는 시사를 줌으로써 버림받은 사람의 충성심까지 담보했다.


실제로 朴대통령은 어떤 인물이 물러난 지 3개월 뒤에는 어김없이 전화를, 다시 3개월 뒤에는 측근을 보내 인사를, 한 6개월쯤 더 지나면 청와대로 불러 식사와 함께 촌지를 줬다.
이러니 물러난 사람은 '언젠가 다시 부를 날이 있을 것' 이라며 오매불망 대통령의 전화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특히 朴대통령은 전문 경제관료를 중용하는 데는 '끈질기다' 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다. 김정렴 (金正濂.73.전 비서실장) 씨의 경우 5.16 직후 통화개혁에 참여, 재무.상공장관을 거쳐 대통령 비서실장을 9년 넘게 지냈다.
같은날 물러난 남덕우 (南悳祐.73.산학협동재단 이사장) 부총리 역시 재무장관 5년을 합쳐 9년만에 물러났다.
金실장은 다시 주일대사로, 南부총리는 경제특보로 임명돼 10.26을 맞았다. 이런 끈질긴 중용의 수혜자인 태완선 (太完善.작고) 전 부총리는 72년 국제회의 참석차 프랑스에 들러 정소영 (鄭韶永.65.고려종합연구소 회장) 당시 경제수석과 술잔을 기울이다가 그 심경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사실 내가 민주당 정권에서 장관을 했기 때문에 석탄공사 사장 시킬 때만 해도 정치적 제스처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건설장관 시키고, 이렇게 부총리까지 시키잖소. '정말 국가 건설에 필요하다고 생각해 기용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부터 대통령 앞에서 자꾸 고개가 숙여진단 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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