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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새로운 직업 
설계도면의 필요성
  기하학, 대칭, 그리고 비례를 염두에 둔 지젓인 건축은 식행에 들어가기에 앞서 모든 것을 예측해야 했다. 입면에 대한 명확한 설계도를 가지지 않은 채 간단한 도면만을 가지고 집을 짓는 것은 더 이상 생각할 수도 없었고 이미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중세에는 석공들이 가진 '비결'이 입면설계를 대신했다. 그들이 가진 특수한  기술을 일컫는 비결이란 삼각형이나 사각형과 같은 도형에 기초한 간단한 비례체계를 평면설계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후 정확한 설계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때 정확한  설계를 하는 데 사용된 도면은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도면은 정확한 척도와 치수가 기입된 그림이라 할 수 있는데,  정확한 설계도를 만들기 위해 여기에 또 다른 형태가 부가되었다. 건물의 구조를 설명하는 단면도, 건물을 비례관계 속에서 표현하는 직교형이나 기하학적 입면도, 관찰자의 시각을 고려하여 표현하는 원근법도가 그것이다. 건축가는 건설현장  출신의 기술자에게 돔녀 제작자로 변화했다. 그리하여 건축가들은 건설에 종사하면서  얻은 경험이 아닌 도면을  통해 자신의 예술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건축에 뛰어든 화가들
  최초의 르네상스 건축가들은 처음에는 다른 예술  분야에 종사하던 사람들이었다. 피렌체 건축의 두 창시자인 브루넬레스키와 미켈로초는 수련과정을 거치면서 교육받은 세공사였다. 하지만 세공사가 어떤 이유로 중세 말까지도 주요한 예술가로 존재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면 이 사실이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세공사는 도면의 대가이자, 조각의 숙련가였으며, 건축지식은 없다하더라도 건축의 형태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건축형태는 장식에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건축형태를 만든 르네상스는 이러한 관계를 단절했고, 15세기 중반 이후에는 건축에 참여한 세공사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도면의 발전과 더불어 화가들이 세공사들의 역할을 이어받게 되었다. 가장 위대한 화가들은 건축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한번도 건물을 짓지는 않았지만 건축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자신의 노트를 상상의 건축 도면으로  채워 넣었다. 특히 그는 방사형태의 중앙집중식 설계를 가진 교회 건물에  매혹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말년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밀라노에 프랑스 왕의 부관인 샤를 당부아즈를 위한 빌라의 설계를 맡기까지 했다. 시에나의 화가인 발다사레 페루치는 로마에 세운  파르네시나라 불리는 빌라의 건축과 프레스코화로 매우 유명하다. 브라만테 곁에서  수학했던 라파엘로는 브라만테가 사망하자(1514), 성베드로 성당의 건설을 위임받았다. 이후  그는 비트루비우스를 번역하고 고대 로마의 기념비적인 건축을 연구하며 빌라 마다마나 궁들(피렌체의 판돌피니, 로마의 브란코니오)을 구상하고, 또한 무엇보다 브라만테가 명확한 형태로 공식화하지 못한 성 베드로 성당의 설계를 완성하면서 젊은 시절을 건축에 헌신했다. 그의  제자인 줄리오 로마노는 만토바를 거치며 건축가가 되어 팔라초 델 테, 성당, 공작 궁의 승마연습장 등 많은 중요한 건축물들을 지었다. 비뇰라가 카프라롤라에서 눈속임 기법을 이용해 원주의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은 자신이 화가라는 것을 잊지 않았음을 알려 주는 것이다. 원래 화가였던 바사리는 결국 토스카나 공작의 건축가가 되어 그를 위해 피렌체의 우피치궁과 피사에 소재한 생 에티엔에 오더를 가진 성당을 지었다. 그러나 가장 급격한 전환을 이룬 화가는 볼로냐 출신의 세를리오이다. 페루치의 제자였던 그는 스승에게 도면을 상속받아 결국 화가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건축, 보다 정확히 말하면 건축이론에 헌신하게 되었다. 스페인의 경우 그라나다의 알함브라에 자리한 카를로스 1세의 궁전을 만든 페드로 맞추카는 로마에 있는 라파엘로의 작업실에
서 활동했던 화가였다.
 
건축에 뛰어든 조각가들
  조각가들 역시 건축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세공교육을 받았을 뿐 아니라, 도나텔로와  함께 조각 작업을 했던 미켈란젤로는 코지모  데 메디치의 건축가가 되어 결국에는  조각가의 길을 포기하게 되었다. 매력적인 조각가였던 조반  안토니오 아마데오는 베르가모의 콜레오니 예배당의 건축가가 되어, 베네치아의 피에로 롬바르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롬바르디에 중앙집중식 설계를 도입하는 데 일조를 했다. 미켈란젤로는  조각에 소질을 보여 그 분야의 공부를 하고 조각가로  출발해 조각과 회화분야에서 유명해진  후, 건축가로서 생을 살게 된다. 처음에 그는 피렌체에서 산 로렌초의 신 제의실을 건설했으며 로마에서는 성 베드로 성당 건설현장에서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되었다. 그는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의 입구,  페르네세궁의 정원, 카피톨리움, 포르타 피아 등에서 자신만의 독특하고도 자유로운  방식으로 원칙을 해석하여 건축기법을 개선했으며 모든 형태에 매두 개성  있는 도안을 했다. 자신을 입양한 스승 안드레아 산소비노의 지도를 받아 조각가로서 출발했고 자신의 이름도  스승의 이름을 따른 야코포 산소비노는 베네치아 영주의 주임건축가가 되어 그를 위해  르네상스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기념비적 건물들, 즉  조폐국, 도서관, 그리고 로제타를 지었다. 그의 제자인 알레산드로 비토리아 역시 궁의 파사드를 그리는 도면가가 되었다.  스페인의 디에고 드 실로에 역시 수련과정을 거치면서 교육받은 조각가였다. 그런데 역석적이게도 르네상스 시대에는 건설현장 출신의 위대한 건축가가 거의 없었다. 베네치아의 모로 코두시, 안토니오 다 산갈로, 산미켈리, 팔라디오만이 석공에서 출발했을 뿐이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피릴베르 들로름을 들 수 있다.
 
아마추어 건축가들
  건축예술에서 실용적인 경험보다 도면설계나 이론이 1차적인 역할을 하게 됨으로써, 아마추어 건축가도 전문건축가가 될 수 있었다.   최초의 아마추어 건축가로는 인문주의자로 탈바꿈한 피렌체의  귀족 알베르티가 있다. 그는 비트루비우스의 방식에 따라 방대한 건축서를 집필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리미니의 시기스몬도 마랄테스타, 피렌체의 조반니 루체라이, 만토바의 루도빅 곤차가를 도와 건축에 몰두하게 되었다. 알베르티는 자신의 집에서 작업장까지의 거리가 먼  데다 실제 작업에 필요한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작업의 실행은 리미니의  마테오 데 파스티, 피렌체의 베르나르도 로셀리노, 만토바의 루카 판첼리처럼  전문적인 사람들에게 맡겨야 한다. 작업의 실행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김으로써 문제가 생기기도  했지만 그들의 작품은 가장 혁신적이고도 아름다운 초기 르네상스 건축물로 기록된다. 탁월한 재능을 가진 알베르티가 아마추어였다는 사실은 예외인 경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알베르티가 유일한 경우는 아니었다.
  파도바에 정착한 베네치아의 귀족 알비스 코르네르는 16세기 중반에 작은 건축서 한 권을 저술했는데, 나중에는 직접 건출물의 도면을 그리기도 했다. 크로네르가 건축에서 보인 재능은 매우 뛰어났다. 화가 팔코네토가 건축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도 코르네르가 자신의 궁에 직접 건설한 극장을 보고 나서였다. 아킬레이아의  총대주교인 다니엘레 바르바로는 비트루비우스에 대한 매우 지적인 주석을 달았으며 팔라디오를 옹호했다. 단순한 석옹에서 출발한 팔라디오는 비첸차의 귀족인 잔조르조 트리시노의  혜안과 배려 덕분에 건축가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팔라디오는 잔조르지오 트리시노를 위해  빌라를 하나 지어 주었다. 프랑스의 경우 루브르궁의 증축을 맡은 법관 출신의 피에르 레스코는 자신의 설게를 수정하는 데 젊은 밥티스트 뒤 세르소에게 도움을 청해야만 했다.
  마침내 16세기 말에 피렌체에서 메디치가의 한 사람인 돈 조반니가 전문적으로 건축에 손을 대었다. 피사의 산토 스테파노 데 카발리에리 정문 콩쿠르에 모델을 제시한 그는, 17세기 초에 산 로렌초 성당의 후진에 메디치가의 거대한 장례예배당을 설계했다.
 
 모델과 목공
  도면이 정확해지긴 했지만 그것으로 건물의 입체도면에 대한 설명이 충분했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도면을 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고객들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고대처럼 우선 목공이 나무로 축소된 모델을 만들어 건축물의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피렌체의 큐폴라를 시작으로 대규모 콩쿠르를 통해 건축물의 설계를 채택하게 되었을 때 참가자들은 모델을 통해 자신의  설계를 설명했다. 그래서 심사과정에서  건물을 제대로 설계했는지 평가를 내리기 위해 모델의  세부를 보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파비아 성당이나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 같은 거대한 작업장에서는 설계의 입체적인 측면을 판단한 수 있도록 모델의 내부로 들어가는 것이 가능하게끔 좀더 값비싸고 커다란 크기의 모델을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모델을 만드는 데에는 도면과 특수한 건축용어에  능통한 목수의 도움이 필요했다. 우리는 이러한 작품들을 만드는 과정이 건축교육의 역할을  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르네상스의ㅡ 이탈리아, 특히 피렌체에서 목공교육을 받은  건축가들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중에서도 안토니오 치아케리는 가장 분명한 예이다. 그는 처음에  브루넬레스키의 모델을 건조하는 일을 맡은 목공으로 시작했다가 브루넬레스키가 사망한 후  그의 후계자가 되어 큐폴라의 형태에 대한 전문가로 두각을 나타냈다. 이러한 지위를 통해 그는 산 로렌초의 뮤폴라와  아눈치아타의 원형 성가대석을 설계했고,  산 미니아토에 자리한 포르투갈 추기경 장례 예배당의 중앙집중식 설계도면을 드렸다. 줄리아노 다 산갈로, 크로나카라 불리는 시모네 델 폴라우올로, 피렌체의 줄리아노 다  마이아노 역시 목공교육을 받은 건축가들이었다. 프랑스에서 최초의 샹보르 모델을 만들었던  도메니코 다 코르토나는 후에 파리시청 건물의 설계를 구상하게 되었다. 안토니오 다 산갈로를  위해 보델을 만들던 안토니오 다 라바코는 건축서를 한 권 저술하기까지 했다. (로마, 1552)     건축가의  지위상승  건축이 단순한 기술에서 설계도면에 대한 전문적인  기술을  지닌 사람만이 다룰 수  있는 학문이 되는 과정에서 건축가라는 직업은 상당한 지위를 갖게  되었다. 우선 이것은 그리스에서 유래한 건축가라는 이름을 통해 그 가치를 부여받게 되었다.
  이 말ㅇ느 15세기에 이탈리아에 널리 퍼지게 되었는데, 롬바르디아 지방에서만은 오랜 기간 기술자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프랑스에서는 훨씬 뒤늦게 느린  속도로 이 말이 전파되었는데, 그 이유는 이 말이 종종 건설계획은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이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석공장이라는  명칭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진적으로 건축가라는 명칭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좀 더 고상한 이름을 통해 건축가는 품위를 갖게 되었고 그럴수록 건축업자와는 더욱 구별되었다. 당시에 예술의 지위가 전반적으로 격상됨에 따라 건축가는 예술가로 인정되어 혜택을 얻게  되었다. 그에 대한 중요한 증거의 하나는 이탈리에서조차 건축가들의 서명이 화가나 조각가의 손을 통해  건축물의 좋은 위치에 남겨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체세나의 마테오  누치(1452), 나폴리의 노벨로 다 산 루카노(1470), 로레토의  마리노 체드리니(1476), 파도바의 팔코네토(1524), 마세르의 팔라디오(1580)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건축가는 지위가 상승됨에 따라 건축가는 연구대상이 되었고, 또한 세인에게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 미켈로초를 친구처럼 대했던 코지모 데 메이치는 1433년부터 그가 유배생활을 하고 있을 때에도 그를 베네치아로 데리고 갔을 정도였다.
  1447년 피렌체 성당은 성당에 매장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법칙을 가조기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당의 가장 훌륭한 장소에 브루넬레스키를 묻고는 그의 초상과 공화국의 서기관이 지은 운문으로 된 조사를 새겨넣었다. 우르비노의 공작이 페데리고 몬테펠트로는 루치아노 라우라나에게 건축 감독이라는 책임을 맡기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건축을 숭배하고 있으며 건축가에서 경의를 표하는가를 밝혔다.
  프란체스코 디 조르조는 시에나인임에도 불구하고 나폴리와  우리비노의 마르셰, 제시 안코나, 그리고 롬바르디아 지방의 파비아와 밀라노에서 도움을 요청받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필리베르 들로름은 앙리 2세와 이브리의 대수도원장에게 주재 부속사제의  작위를 수여받았다. 또한 매우 검소한 사람이었던 팔라디오조차 베네치아의 최고 계층과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로써 예술의 주요한 위치를 점했던  건축은 고상한 예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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