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으로 이동

메뉴 건너뛰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제11장   전체 작품과 건물의 모형을 만들 때 하나에 그쳐서는 안된다. 


반대로 건물의 모든 주요한 부분을 보여 주어 실제 작업에 편의를 줄 수 있는 여러 모형들을 많이 만드는 것이 좋다.
  나는 당신이 만들려 하는 전체 건물의 일반모형을 만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일반모형은 만들게 될 작품의 주요 부분이외의 부차적인 부분도 표현해서 각 장식과 치수를 눈으로 확인하고 인식할수 있도록 제작해야 한다. 따라서 현관, 정문, 건물 정면의 열주, 건조실, 욕실, 계단, 예배당, 굴뚝, 채광탑 등을 비롯해  필요한 부분의 모형을 따로 만들어야 하며 장식을 해야 한다면 그것 역시 표현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모형을 만든다면, 계획이  합리적인지 아닌지, 또는 원하는 대로  만들어졌는지, 필요한 사물들이 건물에 적합한지,  건물에 자리할 장식들이 알맞고 적합한지를  정확히 인식하고 판단하기가 쉬워진다. 확실히 모형을 만들게 됨으로써 얻게  되는 이점 중의 하나는 모형을 통해 건축가가 거대한 건축물을 적합하게 원하는대로 이끌어 가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모형을 통해 우리는 건축가가 자신의 예술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는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모형을 통해 지출이 과하지는  않은지, 또한 지출이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의 한계를 넘어서지는 않은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필리베르 들로름'건축', 1567년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의 장례식(1447년 2월 18일)


  바티스타 아르놀피와 피에로 디 카르디나레 루첼라이 등으로 이루어진 피렌체 성당의  고결하고 현명한 재산관리위원회는 라그 드 라 렌의 결정에 따라 웅변적인 힘과 재능을 통해 탁월함을 입증한 한 사나이의 유해를 수습할 영광을 갖게 되었다. 그 이름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로 피렌체의 시민인 그는 오랜 세월 동안 성당의 큐폴라와 옥상누각의  건설책임자를 역임했으며, 연구하고 숙달된 솜씨를 발휘한 결과 아치를 대지  않은 거대한 큐폴라를 완성했다. 이 점은 재산관리위원회가 입증하는 바이며 피렌체 시민이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재산관리위원회는 일치된 목소리로  브루넬레스키의 유해를 기림으로써 그의 명성을 높이고 불멸의 영광을  얻도록 했다. 재산관리위원회는 지금까지  성당의 종탑에 매장하고 보관되어 있던 브루넬레스키의 시신을 그곳에서  옮겨와 성당의 바닥 아랫부분에, 즉 주요한 대가들이 선서를 하는 중앙에서 약간 벗어난 바닥의 아래에 깊게 묻었다. 그리고는 대리석으로 된 바닥을 다시 한번 깔고 거기에 라틴어로  '건축가 필리포'라는 글씨를 새겨 놓고는 다시 그 위로  아치형의 덮개를 넣었다. 위원회는  또한 그의 시신이 묻힌,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천장에 있는 첫 번째 창옆에 대리석과 돌로  만든 기념비를 두었고, 그 위에 그가 큐폴라를 만들 때 창안하고  사용한 몇몇 설계도와 함께 그의  인물을 조각하도록 했다.
이밖에 브루넬레스키가 건축가로서 보인 근면함과  그의 업적을 상기시키기 위해  피렌체의 저명한 대법관 카를로 마르수피니가 쓴 시를 파사드에 새겨 넣어 그에게 불멸의 영광을 얻게 했다. 재산관리위원회는 이에 필요한 대리석 모두와 작업에 필요한 인부들을 제공하리라
는 점과 브루넬레스키의 상속인이 장례 비용 일체를  댈 것이라는 점이 공표되었다.  -'필리포 부르넬레스키, 근대건축의 탄생', 1978년
 
페데리고 다 몬테펠트로가 루치아노 라우라나를 우르비노의  건설감독에 임명하다(1468년 6월 10일)
  우리는 천재성과 재질, 특히 고대와 근대 사람들이 항상 높게 평가한 재질을 부여받은 사람들을 존경하고 대우합니다. 특히 건축에서  일곱 가지 학예과목에 속하여  정확성의 최고 단계를 점하는 원칙인 산술과 기하학은 건축의 토대를 이루는  근복적인 가치가 됩니다. 따라서 건축 자체가 하나의 기술로서 우리가 높이 존경하고 평가할 만한 위대한 학문과 재능을 요구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건축가들을 찾아 모든 지방, 특히 토스카나 지방을  돌아다녔지만 이러한 가치들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전문적인 건축가를 하나도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루치아노라는 사람의 명성을 듣게 되었는데,  후에 우리는 그의 재능을 보고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편지를 가지고 갈  루치아노는 지적인 사람으로 이 분야에서 훈련을 쌓았습니다. 우리의 도시 우르비노의 조건에 맞고  우리 조상의 명성에 걸맞는 아름답고 고귀한 주거지를 조성하는 것을 결정함에 있어, 우리는 전술한 루치아노를 기술자로 발탁함과 동시에 그를 수많은  벽돌공, 석공, 목공, 대장장이를  비롯하여 직금과 분야에 따라 이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 작업장의 장인들 중에서도 우두머리로  선발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전술한 작업장에서 무엇인가를 배치하고  작업하는 장인들과 인부들. 그리고 모든 관리들과 백성들에게 어떤 사항이든지 전술한 장인인 루치아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점과 그가 명령을 내린 것은 우리 자신의 일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명령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대법관이자 작업장의  재정관리인인 안드레아 카토니 각하와  작업에 필요한 물품들을 공급해 주는  관리인 마테오 달리솔라 각하에게,  필요한 급여와 공급물에 대해 장인 루치아노가 명하고 요구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정확히 공급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루치아노는 작업장에서 일하는 모든 장인들과 인부들 중 그의 마음에 들지 않거나 만족스럽게 일하지 못하는 자들을 돌려보내고 다시 다른 장인들과 인부들을 그의 뜻에 따라 급여계약이나 일당계약을 맺는 일이며, 자신의 임무를 다하지 못한  자들의 급여나 처우를 책망하고 제한할 수 있는 일이며, 작업에 임명된 건축가와 작업 우두머리가 할 수 있는 그 밖의 모든 일을 포함해 우리 자신이 그곳에 있었더람녀 행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과 판결력과 권위를 부여받았습니다. 위에 기술한 바를  확인하며 전술한 문서에 우리의 도장을 날인합니다. -파스칼레 로톤디 '일 팔라초 두칼레 디 우르비노', 1950년    팔라디오가 알고 있는 아마추어 건축가들  ... 우리는 전반적으로 평범해 보이지만  탁월한 정신과 부로 가득  찬 비첸차를 비롯해서 그리 명성이 높지 않은 다른 많은 곳에서도 이와 같은  건축물들을 보게 된다. 내가 오늘날 대중에게 선을 보인 연구를 처음으로 실천에 옮긴 곳이  바로 비첸차였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수많은 아름다운 건물들을 볼 수 있다. 이 건물들은  이곳 출신의 많은 교양인들이 만든 것으로 이들 교양인들은 우리 시대의 최고 장인들에 견줄 만한 해박한 건축술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로는 우리 세기의 우대한 인물 잔 조르조 트리노, 티에네가의 형제인 마르코 안토니오와 아드리아노 공작, 기사 안테노르 파겔로  등을 비롯해 사후에 그들의 고귀한 건물이 불멸의 영광을 얻은 사람들이 있다.
  또한 우리는 지금 수많은 분야에 능통한 파비오 몬사,  발레리오의 아들이자 수정을 세공하는 저명한 장인인 엘리오 데  벨리, 다양한 학문을 공부한 지성의  소유자로 건축은 물론 독인이라는 제목의 영웅시에서 볼 수 있듯이 시에도 탁월하며 동시에 비첸틴에 있는 보스키 디 난토에 집을 짓기도 한 안토니오 프란체스코 올리비에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물에 대한 사려 깊은 관찰자로 건축에 종사하고 있는 발레리오 바르바라노를 예로 들 수 있다. -팔라디오 '건축', 1570년
 
  건축가들의 용어
  렌의 석공 피우르가 암말을 타고 아름다운 성을 건설하기  위해 샤토브리양으로 갔을 때, 그는 프랑스 전역에서 모여든 수많은 인부들이 정면,  받침대, 오벨리스크, 원주, 주두, 프리즈, 코니스, 기초 등의 단어만을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한번도 그러한 말들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그는 속으로 깜짝 놀랐지만 자신이  말한 차례가 되었을 때 말로 적당히 자신의 무지를 속여넘길 생각으로 그들에게 건물이  완벽하게 만들어졌으며 건물에 필요한  재료가 훌륭히 사용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은 그를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했고, 그동안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남아 있던 심오한 문제에 대해 더 자세히 물어 보았다. 결국 그는 자신이 아주 박식하다는 인상을 심어 준 것이다.  그러나 이 사기꾼은 승리에 취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말하며 뒤로 물러나,  우매한 군중들은 자기 없이 고만고만한 잡다한 사람들의 말만으로는 제대로 실마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하는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그들은 더욱더 놀라게 되었다.  그 뒤 '잡다한 사람들 속에서 피우르처럼 과감한'이라는 말이 유래하게 되었다. -노엘 뒤 파이 '외트라펠 이야기', 1585년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회원 삭제 대상자 mahru 2012.12.26 16,800
공지 회원정보 정리작업(삭제) 안내 공지 mahru 2012.11.02 13,095
28 [朴正熙의 政治經營學]17.수출업자 특별대우...밀수에 걸려도 mahru 2008.07.30 7,448
27 [朴正熙의 政治經營學]16.좌초한 경재개발 수출로 돌파구 mahru 2008.07.30 7,346
26 [朴正熙의 政治經營學] 15.맨손의 재건 두달만에 청사진 완성 mahru 2008.07.12 7,639
25 [朴正熙의 政治經營學] 14.발전 모델은 일본 추진은 군대식 mahru 2008.07.12 7,644
24 [朴正熙의 政治經營學] 13.가난 추방은 천명 필생의 업 간주 mahru 2008.07.12 7,583
23 [朴正熙의 政治經營學] 12.5.16 도왔지만 끝내 토사구팽 mahru 2008.07.12 7,461
22 [朴正熙의 政治經營學] 11.독립군 토벌 기회조차 없었다 mahru 2008.07.12 7,442
21 [朴正熙의 政治經營學] 10.광복군 참여 경력날조자에 대노 mahru 2008.07.12 7,477
20 [朴正熙의 政治經營學] 9.첫결혼 실패가 '군인의길' 재촉 mahru 2008.07.12 7,225
19 [朴正熙의 政治經營學] 8.동기 불분명한 군인으로의 변신 mahru 2008.07.12 7,350
18 [朴正熙의 政治經營學] 7.박정희 황태성 제물삼아 색깔시비 탈출 mahru 2008.07.12 7,251
17 [朴正熙의 政治經營學] 6.북 5.16나자 "박정희 연구" 긴급회의 mahru 2008.07.12 7,345
16 [朴正熙의 政治經營學] 5.이후락 북에서 놀림당하고 온것 같아 mahru 2008.07.12 7,369
15 [朴正熙의 政治經營學] 4.김일성 이후락 불러 박정희 의중 타진 mahru 2008.07.12 9,086
14 [朴正熙의 政治經營學] 3.김일성 박정희 속셈 읽고 선수 mahru 2008.07.12 8,171
13 [朴正熙의 政治經營學] 2.경제개발 시간벌기 위한 북 발목잡기 mahru 2008.07.12 8,940
12 [朴正熙의 政治經營學] 1.북 중화학 우위 선전영화에 자존심 손상 mahru 2008.07.12 7,716
» 건축의 르네상스 제11장 전체 작품과 건물의 모형을 만들 때 하나에 그쳐서는 안된다. mahru 2008.01.09 7,803
10 건축의 르네상스 제10장 건축가는 자신의 의도를 평면도나 입면도 및 모형을 통해 건물 전체의 형태를 있는 그대로 표현해야 한다. mahru 2008.01.09 8,178
9 건축의 르네상스 제9장 중앙집중식 건축양식과 원형의 가치 mahru 2008.01.09 7,92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Nex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