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正熙의 政治經營學]23.나 고속도로에 미쳤어 정치적 반대 묵살

by mahru posted Jul 3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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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나 고속도로에 미쳤어 정치적 반대 묵살
고속도로는 이제 우리 생활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레 자리잡고 있다.
지금 와서는 정부 최고결정권자의 식견이 국가발전에 미치는 영향력의 지대함을 거론할 때 대표적인 사례로 등장하는 박정희 (朴正熙) 의 고속도로 건설도 당시에는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박정희는 67년 4월 제6대 대통령선거 공약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 구상을 처음 밝혔다.
그해 12월에는 국가기간 (基幹) 고속도로건설 계획조사단을 만들어 '단군 이래 최대의 역사' 로 일컬어진 경부고속도로 건설사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반대는 거셌다.
야당과 언론은 사업검토가 불충분한 정치공사라고 몰아붙였다. '대원군 (大院君) 이 경복궁을 짓다가 쫓겨났듯이 박정희도 경부고속도로를 만들다가 망할 것' 이라는 저주어린 비난도 있었다. 여당과 정부의 고위인사 중에서도 국가재정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가장 비난전화를 많이 받은 사람은 당시 국가기간 고속도로건설 계획조사단장 안경모 (安京模.80) 씨. "오전7시만 넘으면 여야 국회의원들이 우리 집으로 전화해 '대통령을 똑바로 모셔라' 고 호통치는 거예요. 심지어 어떤 의원은 '재벌들 벤츠 타고 편히 놀러다니라고 고속도로를 만드느냐' 고 따지더군요. " 박정희는 여론과 정치권의 반대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대한 朴대통령의 열정은 계획 단계에서부터 대단했다.
安씨가 소개하는 일화 한토막. "계획조사단이 발족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거예요. 하루는 朴대통령이 불러 오전10시쯤 청와대에 갔더니 면도도 안해 꺼칠한 얼굴로 아침도 거른 채 2천5백분의1 지도에다 경부고속도로 노선을 긋고 계셨어요. 오전5시부터 작업을 하셨다는 거예요. 나를 보더니 '임자, 나 요즘 고속도로에 미쳤어' 하시는 거예요. " 朴대통령은 경부고속도로 노선을 정하기 위해 지도를 직접 챙겨들고 헬리콥터로 전 구간을 일일이 현지답사했다.

 

獨 아우토반 보고 결심

朴대통령이 고속도로에 마음을 빼앗긴 것은 64년 12월 서독 방문 때였다.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가 1932년 세계에서 처음 만든 본~쾰른간 아우토반 (고속도로) 을 시속 1백60~1백80㎞로 질주하며 고속도로의 경제적 효용성을 처음으로 인식했다.
당시 통역을 맡았던 백영훈 (白永勳.67.한국산업개발연구원 원장) 박사의 회고. "朴대통령은 쾰른에서 본으로 가던 중 차를 멈추게 하더니 갑자기 차문을 열고 도로에 내려서는 거예요. 약 10분간 노면과 중앙분리대.교차시설등을 주의깊게 살펴보시더니 안내역을 맡은 뤼브케 대통령 의전실장에게 고속도로 건설기간과 건설비등 이것저것을 자세히 물으셨죠. " 다시 차에 오른 朴대통령은 수첩과 펜을 꺼냈다.
계속되는 白씨의 증언. "朴대통령께서 우리나라 지도를 그리시더니 서울과 부산.목포.강릉.인천을 각각 연결하는 선을 그으시대요. '고속도로를 구상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죠. 에르하르트 총리도 朴대통령에게 '경제개발을 하려면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해야 한다' 고 권고했
습니다." 이런 결심은 귀국 즉시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겨졌다.계속되는 그의 증언. "귀국한지 석달만인 65년 3월께 朴대통령께서 나를 불러 고속도로 건설의 경제적 타당성을 조사하라고 지시했어요. 두달만에 올린 보고서에서 일본의 청구권 자금등을 이용,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것이 좋을 것같다고 건의한 기억이 납니다." 물론 朴대통 령이 고속도로 건설을 서두른 데에는 경제개발의 본격화에 따른 철도수송의 과포화와 울산
정유공장 건설이후 공급과잉 상태에 놓인 아스팔트 처리라는 경제적 요인도 한몫 했다.


朴대통령은 서울~부산간 4백38㎞ (당시 추정)에 도로폭 24의 4차선 고속도로를 건설하는데 드는 비용을 뽑아보라고 6개 기관에 지시했다.
결과는 건설부가 6백50억원으로 최고액, 서울시가 1백80억원으로 최저액을 산출해 냈다.
김정렴 (金正濂.73)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의 증언. "朴대통령은 6개기관에서 산출한 최고.최저액의 중간액과 현대건설이 제시한 2백80억원을 참고해 대략 3백억원, 여기에 예비비10%를 가산해 일단 3백30억원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재무부 이재국 이재과장 직무대리로 건설비용 산출작업에 참여했던 홍인기 (洪寅基.59.한국증권거래소 이사장) 씨의 얘기는 다르다.
"67년 11월께였을 거예요. 6개기관의 대표자들이 청와대에 들어가 오후2시부터 차례대로 브리핑했는데, 재무부는 맨 마지막 순서였어요. 그때 재무부가 보고한 금액은 3백30억원이었습니다." 브리핑이 끝난 시간은 대략 오후6시쯤. 서봉균 (徐奉均.71) 재무장관을 비롯한 5명의 재무부팀이 막 청와대 정문을 나서려는 순간 朴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朴대통령이 주는 저녁을 먹었다.
재무부팀의 보고에 만족했다는 표시였다.

 

東名고속도의 5분의1
정부는 처음 세계은행에 차관을 요청했다.
세계은행에서는 조사단을 파견해 서울과 부산의 중간지점에 1주일간 머무르며 자동차가 몇 대나 지나가는지를 조사했다.
결론은 '경부고속도로는 정치적.군사적으로는 중요할지 모르나 경제적으로는 그 중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정부는 대일청구권 자금 27억원을 포함해 3백31억원의 자금을 자체 조달했다.
공사기간중 朴대통령이 특히 염려했던 부분은 감독관과 건설업자의 결탁으로 부실공사가 초래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당시 육군본부 공병감실 공사장교 (대위) 로 있다가 현장감독으로 차출돼 2년 넘게 현장에서 일한 심완식 (沈完植.59.전 한국산업안전공단 국장) 씨. "朴대통령은 현장에 오시면 꼭'업자들 하고 결탁해 엉터리 공사를 하지 말라' 는 말씀을 하셨어요. 업자에게 돈 받지말라고매달 금일봉을 주셨지요. 요새로 치면 10만~20만원 정도 됐을 겁니다." 고속도로 건설과정에서 朴대통령의 속전속결 전법이 단연 돋보이는 대목은 용지매입 대목이다.


김정렴씨의 증언. "朴대통령은 서울~수원간 노선을 대략 정한 후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를 불러 '용지 확보는 빠를수록 좋아. 시간을 끌면 땅값이 춤출 것 아니오. 1주일 이내에 끝내도록 하시오' 라고 지시했어요. 두 사람은 지시대로 완수했어요. 다른 구간도 같은 식이었습니다." 68년 12월17일자 박정희의 내각에 대한 지시각서 (정부기록보존소 소장) 는 그의 꼼꼼함을 잘 드러내 준다.
당시 고속도로는 국민에게 낯설었다 '고속도로상에 사람.동물등 교통장애물이 일절 없도록할 것. 고속도로는 그 속도에 생명이 있는 만큼 사람이나 기타 장애물 때문에 자동차 속도를 제대로 못 내는 일이 없도록 일반 국민, 특히 국민학생들을 계몽할 것. ' 박정희는 고속도로 이용률과 친숙감을 높이기 위해 경인국도를 일부러 보수하지 못하게 했다.
'한국 전자산업의 대부' 로 알려진 김완희 (金玩熙.70.미국 거주) 박사의 증언. "朴대통령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통행료 1백원을 아끼려고 경인고속도로를 이용하지 않아요. 그래서내가 보수하지 말고 내버려두라고 그랬어요' 하십디다." 68년 2월 착공한 경부고속도로는 완공목표를 거의 1년이나 앞당긴 70년 7월 개통됐다.착공 2년5개월만이었다.
총 공사비 4백29억원에 연인원 약 9백만명이 동원된 공사였다.
㎞당 약 1억원이 든 셈으로 그 당시 건설중인 도쿄 (東京)~나고야 (名古屋) 고속도로 건설비의 5분의1밖에 들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값싸게 건설한 고속도로' 란기록을 세운 것이다.
그러나 '선 (先) 개통 후 (後) 보완' 이란 원칙아래 서둘러 완공한 경부고속도로는 후에 땜질공사로 몸살을 앓았다. 90년말까지 경부고속도로 보수비는 약 1천5백27억원으로 건설비의4배 가까운 비용이 들었다.
'누더기 고속도로' 란 별명도 이 때문에 얻어졌다.


경제논리 존중의 '모범'
하지만 당시 가난한 나라살림에 허술하나마 고속도로를 만든 덕분에 경제발전의 기틀이 마 련됐다는 반론은 설득력을 가진다.
선진국 수준으로 건설하려 했다면 비용도 비용이려니와 12년의 세월은 소요됐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당시 현대건설 중기관리과장이었던 이명박 (李明博) 의원은 "중요한 것은 당시 경부고속도로가 정치논리를 철저히 배제하고 순수히 경제논리에 입각해 만들어진 것" 이라고 강조했다.
정치논리로 오염돼 시작부터 비틀거리고 있는 현재의 경부고속철도 건설과 관련, 반드시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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