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르네상스 제7장 기록과 증언

by mahru posted Jan 0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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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장 기록과 증언
고대의 재발견과 고딕에 대한 거부
1402년 로마의 브루넬레스키
  인물의 눈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선한 정신과 만물을 바라본 줄 아는 혜안이 깃들인 것 같아 보이는 조각들이 정신없이 바라보며, 그는 고대의 건축양식과  그것에 담긴 대칭에 주목했다. 그는 거기에서 팔다리나 뼈와 같은 일종의 체계가 존재함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건축양식은 지금까지 사용한 방법과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그에게 놀라움을  주었다. 그는 고대 조각상을 바라보며 그 양식과 유형에 주의를 기울이려 노력했다. 거기엔 건물의 구조와 안정성, 각 부분, 적합한 기능 수행, 그리고 장식이 있었다. 수많은 경이와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는 탁월함과 능란함, 그리고 음악적인 비례가 서려있는 고대의  건축방법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는 가장 정확하고 용이하며 효과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장소를 잡았다.
  로마에서 체류하는 동안 그는 거의 매일 조각가 도나텔로와 함께 지냈다. 그들은 함께 로마와 그 근교에 자리한 거의 모든 건물의 대략적인 명세서를 만들어 거기에 넓이와 높이를 기재했다. 그들은 많은 곳을 파  보아 건물을 이루는 부분들의 결합상태와  그 특성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그것이 장방형인지 다각형인지, 혹은 완전한  타원형인지, 아니면 그도 저도 아닌 어떤 것인지를 말이다. 또한 그러한 작업을 통해  기초를 비롯한 여러 부분들의 높이를 추정할 수 있었다. 예컨대 지붕의 높이는 기초와 초석의  높이를 통해 가늠할 수 있었다. 그들은 메모지를 만들기 위해 잘라 놓은 양피지 묶음 위해 브루넬레스키만이 알아볼 수 있는 번호와 문자를 기입해 넣었다.
  그들은 상당한 비용을 들여 짐꾼과 인부를  고용해 구멍을 파고 각 부분들의  결합상태를 확인하고, 예술작품과 유물이 발견되는 건물을 찾아내었다. 그들이 왜 그런 일을 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돈벌이를 하려는 사람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을 '보물을 찾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브루넬레스키의 삶', A.마네티로 추정됨    바사리가 본 고딕 건축(1568)  고딕이라는 양식이 있다. 그 장식적 요소와 비례는 고대나 현대의 것과 매우 다르다. 오늘날의 훌륭한 건축가들이라면 따르지 않을 정도로 그 양식은  기형적이고 야만적이며, 각 요소들은 법칙에서 벗어나 있다. 우리는 거기에서 혼란과 무질서만을 볼 수 있다.
  이 건축은 너무나 많이 유포되어 세계를 전염시켜 왔다.  정문은 아무리 가벼운 무게라도 지탱할 수 없어 보이는, 포도나무 같은 가는 나선형 원주들로 치장되어 있다. 파사드와 장식이 붙여진 부분에는 각뿐, 뾰족탑, 나뭇잎 장식등으로 치장된 저주받은 작은 벽감들이  서로 겹쳐져 쌓여 있어, 이러한 혼합체가 균형을  잡고 서 있기가 불가능해 보일 정도이다.  모든 것은 돌이나 대리석이 아닌 종이처럼 보인다. 또한 너무 많은 돌출부, 단절부, 콘솔레트,  나사 송곳 등으로 비례가 무너져 보인다. 모티브들이 너무 겹쳐진 나머지 입구의 꼭대기가 지붕에 닿을 정도이다.
  이 양식은 고트인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전쟁중에 고대의 건축물을 파괴하고 건축가들을 살해한 그들이 생존자들과 함께 만들어 낸 것이 이러한  양식이다. 원형천장을 첨두형 궁륭의 위에 올린 이러한 저주받은 건축이 이탈리아 전체를  뒤덮었다. 이탈리아는 마침내 이러한 양식에서 완전히 벗어났지만 말이다. 신이여 모든 나라를  이러한 건축과 방법에서 보호하소서! 우리의 건축 미에 견줄 때 추하기 짝이 없는 그들의 건축은 더 이상 말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다.
 
랑그독의 지배자인 안 드 몽모랑시가  님에 소재한 고대 건축의  보존을 위해 내릴 명령(1548년 9월)
  프랑스의 최고 남작이자 원수이며, 대지도자, 그리고 랑그독의 지배자이자 루아의  법관이며 니슴 도시의 일반법관인 안 드 몽모랑스 전하에게 인사를 보냅니다. 전술한 도시를 지나던 중 우리는 고대의 사람들이 만든 아름답고도 거대한 건물을 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중 뛰어난 부분은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환희를 줄 뿐 아니라, 건축에도 많은 이점을 가져다 줍니다. 고대 건축의 모든 비례는 보존되고, 관찰되고, 전수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매일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는 이 도시가 고대 건축물과 가깝게 있을 수 있도록 고대 건축물이 가진 특별한 이점들을 확대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단시간에 모든 고대 유적들을 멸망하게  하고 파괴시키고 망가뜨립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고대의 유적들이 온전히 보존되고 지켜지기를 바라며, 전술한 고대의 건축물을 증축되거나 새로 지어지거나  파괴되지 않도록, 또한 어떤  종류의 고대성이라도 그것을 손상할 위험이 있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지 않도록 전하께서  명령하시고, 그에 대한 명시적인 표현을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그보다 먼저 전술한  루아 사람들을 불러 들여 그들이 선량하지 또한 이러한 일을 시킬 만큼 명민하고  적합한지를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만약 이 일에 부적격한 사람이라면 이성에 따라 반대의 절차를 밟으시기 바랍니다.
  이 일을 하시는 데 저희  모두는 모든 권한을 전하께 위임하며,  모든 법조인과 관리들이 전하의 명령에 따르도록 조처하겠습니다. -'지방 지식인 협회 리뷰', L.EM 라 트레무아유. 다섯 번째 시리즈, 8장, 1874년
 
팔라디오가 본 건축의 르네상스(1570)
  로마 제국의 위대함이 야만인들의 침입으로 손상되기 시작할 때 다른 예술이나 문학과 마찬가지로 건축 역시 최초의 아름다움을 잃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름다운 건축물을 짓기 위한 비레나 규칙성과 같은 훌륭한 미적 원칙들이 왜곡되었고,  결국에는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 완벽과 무지를 오가는 지속적인  과정을 통해 건축은 우리 아버지 세대에 이르러 많은 세월동안 머물러 있던 어둠에서 벗어나 새롭게 등장하였고 마침내 다시 태어났다.
  율리우스 2세의 재위기간 동안, 현대의 가장 탁원한 건축가이자 고대 건축의 위대한 관찰자인 브라만테가 로마에 매우 아름다운 건물들을 지었다.
  그의 뒤를 이어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자코모 산소비노,  발다사레 다 시에나, 안토니오 다 산갈로, 미켈 다 산 미켈레, 세바스티아노 세를리오, 조르졸 바사리, 자코포 바로치 다 비뇰라, 그리고 기사인 리오네(레오니)가 등장했다.
  우리는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밀라노 등 이탈리아의 많은 도시에서 이들이 만든 경이롱 건축물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이외에도 탁원한 화가, 조각가, 문인들이 태어났다. 그중  몇 사람은 아직 생존해 있다. 이 밖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위대한 인물들이 있다. 다시  주제로 돌아가서 이야기하자면 브라만테는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감추어져 있던 아름답고 훌륭한 건축을 다시 찾아낸 최초의 인물이다. 내가 보기엔 그의 작품  중 몇몇은 고대 건축물의 반열에 올리는 것이  합리적이고 정당하다고  생각된다. -팔라디오  '건축', 4권  17장, 1570년 
 

팔라디오가 학습한 고대성
  어린 시절부터 나는 건축을 공부하는  것에 자연스럽게 이끌렸다. 왜냐하면  나에게 고대 로마가 많은 점에서 탁월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건축분야에서도  고대 로마가 그 뒤를 잇는 어떤 시대보다도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건축분야에  대해 글을 남기고 있는 유일한 고대인인 비트루비우스를 나의 스승이자 안내자로 여기고 호기심을 느끼며, 야만족의 시대에 그들의 난폭함을 견디어 내고 우리에게 남아 있는 모든 옛 건물을 연구하고 관찰하기 시작했다.
  고대의 건축물들이 점점 더 중요해지면서 나는 건축물의 각 부분에  대한 연구(대단한 지식이나 특별한 솜씨로 작업한 것이 아니므로 이 연구가 어떤 것인지는 밝히지는 않겠다.)를 시작했다. 나는 너무나 세심한 관찰자가 되어 이탈리아를 비롯한  여러 지역으로 여행을 떠났다.
  나는 그곳에 남아 있는 것에서 총체를 이루고 있는  것을  인식하고 도면에 담았다. 그리고 현재 우리의 일반적인 건축방식과 그곳 건물들의 건축방식이 얼마나 다른가를 확인했다. 또한 우리의 건축방식은 비트루비우스나 알베르티, 혹은 다른 대가의 책에서 읽었던 것과도, 내가 직접 만들어 냈던 것과도 달랐던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나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무척 만족스러움을 느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만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우해 태어났기 때문이다. 나는 수년 전부터 고대의 건축물을 관찰하며 도면을 그리고 학습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나는 고된 연구를 수반하며 나에게 고려의 대상이 될 만한 모든 것을 간단히 글로  옮겼다. -팔라디오, '건축'의 서문, 157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