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종교, 사랑이 깃든 소설
"차선의 꿈"

프롤로그
퀘묵은 김치를 꺼냈다.
주변의 공기를 갑자기 변화시킨다.
정크푸드에 쩔은 이 시대 세속에 전달된 진한 김치 내음은 작가가 이민 가면서 간직했던 김치 맛 즉, 옛 추억 속 고국의 향기이다. 이민자들의 관습은 성장을 멈춘 채 미련을 간직한다. 건축이란 직업은 온갖 사고를 망라하는 영성과 과학적 기술을 온몸으로 체득하며 받아들이는 삶 자체이다. 그대들을 위하지만, 독자 모두를 위한 글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 본다면 느껴보지 못했던 경험을 얻을 수 있고 작가 특유의 철학적사고력을 얻어 배우게 될 터이다.
연필로 건축설계 작업을 하던 시기와 컴퓨터로 건축설계를 하는 시대 차이는 무엇일까?
지금 사람들은 AI에게서 무언가 얻어 가지려고 애쓴다. 참, 바보 같다고 느끼는 작가의 의도는 직업을 빼앗기는 불만이 아니다. 인간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기계문명의 인간 기계화에서 퇴일보하여 컴퓨터 즉, 스마트폰의 칩 속으로 꾸겨 넣어지는 인간성이다. 회복 할 수 없는 인간성을 신성으로 회복하는 노력을 추구한다.
빨리 많은 물리적 성과를 이루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런 이야기가 무에 필요 할까? 말로만 뇌까리는 사랑이란 언어. 그 의미를 배우기도 전에 컴퓨터에 의존하는 시대상 속에 성장을 멈춘 미숙아만 돌아다니는 건축적 현실을 한탄한다. 그 사랑, 컴퓨터도 모르지만, AI는 진짜 모른다. 그것들이 무슨 사랑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사람들은 좋은 집에 살되 인간의 즉, 자신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는 삶만을 축낸다. 행복 할까? 행복이 드릴을 느끼고 폭발적 웃음을 맛보게 하는 것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 슬픈 행복은 느끼지 못한다.
슬픔 속에 무슨 행복이 있냐 구?
그러나, 행복 속에는 슬픔이 있을 수 있다. 많이 울자고 이런 글을 쓴 건 아니다. 웃프 다는 말이 있다. 작가는 웃픈 일을 많이 경험했다. 사생활을 털어 놓았냐 구? 사생활을 근거로 하여 각색 한 건 들어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 갈 수는 없다. 김치 맛이나 그 향기는 변할 수 없는 진리이다.
진실이다. 진심 이어야 한다.
차선의 꿈
건축과 인간 삶의 깊은 연결을 보여주는 소설
인간 모두 완벽할 수는 없다. 최고가 아니더라도 두번째도 좋은 것 이다.
최고가 아닌 차선은 현실적으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가치와 의미가 달라질 수 있지않을까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