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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정치는 낭비 행정 돌파력에 강한신념
박정희 (朴正熙) 대통령은 스스로를 정치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가족모임에서 누가 정치 얘기라도 꺼낼라치면 말을 막으면서 하던 얘기가 있다. "나는 행정가지 정치가가 아니야. 정치전문가는 저기 있네. " 정치전문가란 처남 육인수 (陸寅修.78) 전의원이다.
朴대통령은 71년 3선개헌 반대시위가 한창이던 무렵 선우련 (鮮于煉.작고) 공보비서관과 저녁을 같이 하는 자리에서 불편한 심기를 토로했다. "강한 행정력을 구사해야만 현실정에서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인데, 반체제인사들은 이를 독재라고 부르더구먼. " 박정희는 스스로 행정가라 생각했다.


경제성장과 조국 근대화를 위해 강한 행정력이 필요하다고 확신했으며, 행정의 효율성을 위해 일사불란한 질서유지를 강조했던 것이다. 朴대통령은 정리.정돈이 몸에 밴 사람이다.
그는 가끔 아들 지만 (志晩) 군의 방에 들러 "정돈 좀 해" 라며 꾸짖었고, 비서관들에게도 "군대에서 내무사열도 안받았나" 라며 호통치곤 했다. 일본식 교육의 결과일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강력한 행정력 구사는 국가발전에 필수적인 것이며 결코 '독재' 가 아니었다.
반대세력은 졸지에 '질서 파괴자' , 나아가 '반국가.반체제적 인물' 로 규정됐다. 이같은 사고 방식은 집권 18년간 내내 지속됐다. 박정희는 구시대적 정치에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63년 3월 민정이양 준비를 하던 김재춘 (金在春.70) 중앙정보부장은 박정희로부터 민간에 정부를 이양할 수 없는 이유를 듣게 됐다. "임자, 거 야당에 (정권을) 넘기자고 했는데 (정치정화법을) 풀자마자 난동을 부리잖아. 정권 넘겨줘서 (야당 정치인들이) 할 수 있을 것같아?" 박정희의 눈엔 야당의 이합집산과 권력다툼이 '난동' 으로 비쳤다는 얘기다.
70년대 청와대비서관이었던 권숙정 (權肅正.61) 씨가 들었던 박정희의 야당관 (觀) . "구정치는 청산해야 할 봉건잔재다. 민주주의 한다고 해놓고 내면에서는 파벌 보스가 봉건지주처럼 자기 지분을 가지고 이해를 흥정한다.
야당은 봉건지주모임이나 마찬가지다. 조국의 근대화를 이루려는 세력이 5.16혁명세력, 10월유신세력이다. " 중정 국내 정치분야에서 오래 근무했던 C씨는 "朴대통령은 특히 돈을 요구하는 야당 정치인을 혐오했다" 며 "선명야당을 주장하며 정부를 욕하던 사람이 뒤로는 법안통과의 대가로 돈을 받아갔다는 보고를 듣고는 처음엔 어이없어 하기도 했다" 고 기억했다.
그러나 타락한 정치상에 분개했던 박정희는 얼마후 그 생리를 역이용하는 마키아벨리스트로 변한다. 65년 11월 朴대통령은 꼬장꼬장했던 원로변호사 정구영 (鄭求瑛.작고) 공화당의장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국회의장선거에서 여당의 반란표에도 불구하고 야당쪽 38명이 이효상 (李孝祥.작고) 씨를 밀어 李씨가 의장이 된 무렵이다. "그까짓 40표도 안되는 야당의원 쯤이야 제 편으로 끄는방법이 있지요. "
집권 2년여만에 야당을 낭중지물 (囊中之物.주머니 속의 물건) 처럼 요리하게 됐다는 얘기다. C씨는 "야당 거물은 정보부장이 직접 줬고, 비중이 낮은 의원은 남산 (정보부) 으로 불러주기도 했다. 남산에서 부르면 안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고 증언했다.
돈으로 안될 경우 朴대통령은 철권 (鐵拳) 을 휘두르는 것도 불사했다. 72년 유신직전 밀실 개헌작업을 폭로했던 대가로 보안사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한 최형우 (崔炯佑.62) 의원이 대표적인 경우다.


박정희는 아이로니컬하게도 '민주주의의 꽃' 인 선거를 '혼란의 정점' 으로 간주했다. 71년4월25일 서울장충동에서 대통령선거의 마지막 군중연설을 마치고 청와대로 돌아온 박정희가 유혁인 (柳赫仁.63.종합유선방송위원장) 정무비서관에게 한 말.
"이거 무서워 안되겠어. 수십만명이 모이는데 간첩이 순사옷 입고 들어와 총이라도 한 방쏘면 나라 뒤집어지게 생겼어. " 청와대의 유신개헌 담당자였던 柳씨는 이같은 대통령의 무질서 혐오증이 "간접선거방식 (유신) 을 택한 이유 중 하나" 라고 설명했다.
시종일관 부정적이었던 야당관과는 달리 학생운동에 대한 朴대통령의 시각은 처음과 끝이 달랐다. 장기집권의 동맥경화증처럼 시간과 함께 점차 강경해져 갔다. 60년 4월25일 4.19희생자 위령제가 부산 동래 범어사에서 열렸다.
4.19 직후였지만 이승만 (李承晩) 대통령이 하야하기 전이었기에 당시 공직자들은 학생들을 '폭도' 라고 부르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지역 계엄사령관인 박정희 장군은 이날 비장한 애도사로 참석자들의 귀를 의심케 했다.
"이 나라 진정한 민주주의의 초석을 위해 꽃다운 생명을 버린 젊은 학도들이여, 여러분의 애통한 희생은 바로 무능하고 무기력한 선배들의 책임인 바 나도 여러분 선배의 한 사람으로서 오늘 같은 비통한 순간을 맞아 뼈아픈 회한을 느끼는 바입니다. "
4.19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던 탓인지 64년 한.일회담 반대시위 당시 박정희는 학생대표들을 청와대로 불러 직접 의견을 듣는 한편 시위가 극에 달했던 3월25일엔 "평화적 시위는 허용한다" 는 유연한 자세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유신이 준비되던 71년 10월 박정희는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였다. 국방과학기술원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신설동을 지나 안암동 쪽으로 접어들던 朴대통령 일행은 시위중이던 서울대 사범대 학생들과 마주쳤다. 시위현장을 빨리 지나치기 위해 차가 막 속력을 내려는데 朴대통령이 소리를 질렀다.
"차 세워. " 차가 멈추자 朴대통령은 차밖으로 나와 돌이 날아오는 와중에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 시위대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경호원들이 대통령을 에워싸고 경찰들이 다시 겹을 이뤄 다가가자 학생들이 모두 흩어졌다.
대통령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대학구내 학생처 사무실까지 들어갔다. 학교 관계자들에게 "학생지도 똑바로 하라" 고 질책하고는 경호원들에게 "손에 흙 묻은 놈들 다 잡아 넣어" 라고 외쳤다.
이날 동대문경찰서로 잡혀간 1백여명의 학생들은 단단히 기합을 받고 풀려났다. 유신이후 그의 태도는 더욱 강경해진다. 朴대통령은 74년 '유신헌법에 반대하면 최고 15년의 징역' 을 내리는 긴급조치를 공포했다.
백기완 (白基玩.64) 씨와 같은 재야인사, 이호철 (李浩哲.65) 씨와 같은 문인들이 먼저 잡혀들어갔다. 곧이어 발표된 긴급조치 4호는 전국적 학생운동조직인 '민청학련 (민주청년학생총연맹)' 을 겨냥한 초강경 조치. '민청학련이나 관련단체를 조직.고무.찬양.동조하거나, 대학생이 출석.수업.시험을 거부하거나, 집회.시위.성토.농성하거나 이 조치를 비방하는 자는 최고 사형까지 처할 수 있다' 는 내용이다.
당시 민청학련 의장으로 고등학생 교복을 입고 도망다니다 붙잡혀 사형선고까지 받은 사람이 이철 (李哲.49) 전의원이다. 이런 태도는 박정희식 민주주의관 때문에 가능했다.


유신 직후 중정국장을 지낸 ×씨는 朴대통령의 자랑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 이 정도면 민주주의 잘 하고 있는 거야. 세계에서 민주주의 하는 나라 얼마나 돼. 18개 나라 뿐이야. " 대통령은 일일이 18개국을 손가락으로 다 꼽은 뒤 '동양에서는 일본뿐' 임을 강조했다.
권숙정씨는 "대통령을 포함해 당시 청와대에 근무하던 사람들은 '이렇게 10년만 노력하면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다' 는 열의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고 한다. '일본수준의 경제적 부(富) 를 축적할 때까지 민주주의는 유보한다' 는 개발독재 논리다.
동시에 우리는 우리 수준에 맞는 민주주의, 즉 '한국적 민주주의' 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인권문제도 마찬가지다.
그는 인권정책에 대한 비판의 소리에 "굶어 죽는 사람한테 인권은 무슨…. 백성이 굶지 않게 하는 것이 최고의 인권정책이야" 라고 외쳤다. 그래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방한해'인권' '양심수' 운운할 때도 박정희는 "한국에 그런 문제는 없다" 고 잘라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종필 (金鍾泌.JP) 전자민련총재는 이같은 박정희의 확신에 대해 "아무 것도 없던 나라를 점차 부강한 나라로 만들면서 재미도 느끼고 보람도 있었을 것이고, 그러다보니 자신도 생긴 것" 이라고 해석했다.v 그러나 JP와 같이 공화당을 만들었던 육사 동기생 강성원 (康誠元.69.성원목장 경영) 씨는 "혁명한 사람은 일단 목숨 걸고 시작하니까 독재하게 마련" 이라고 단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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